[여행의 향기] 새우잠 자며 꾸던 독립의 꿈…초라한 상해 뒷골목서 김구를 마주하다

입력 2017-01-22 16:47  

윤태옥의 인문기행 ①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 중국



독립운동가들은 국내외에서 수십년 동안 치열하게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중국 상하이에는 독립운동의 흔적이 여럿 남아 있다. 여행 중 반나절을 할애해 가볼 만한 곳도 적지 않다.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 상하이로 떠났다. 지나갔지만 '오늘도 살아 있는 역사'를 음미해보는 것은 어떨까.

상하이=윤태옥 여행작가 kimyto@naver.com

상하이서 만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상하이를 여행하는 많은 한국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간다. 상하이의 마당로(馬當路) 302호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는 1926~1932년에 쓰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사용된 여러 청사 가운데 가장 오래 쓰인 건물이다. 그러나 상하이 독립운동에서 내가 첫 번째로 꼽는 것은 따로 있다. 1919년 처음 세운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곳이다. 3·1운동의 민족적 염원을 한데 모아 세운 임시정부 청사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919년의 임시정부 청사는 지금의 ‘루이안플라자(瑞安廣場)’란 빌딩 앞에 있었다. 루이안플라자는 상하이 지하철 1호선 황피난루역 2번 출구 앞, 화이하이중로와 마당로가 교차하는 사거리의 동남쪽 코너에 있다. 루이안플라자의 건물 표지에는 ‘SHUI AN PLAZA’라고 쓰여 있다. 방언으로 표기해서 그렇다. 루이안플라자와 화이하이중로의 인도 사이에는 넓은 공간이 있다. 임시정부 청사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이다.

당시 임시정부 청사를 찍은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1919년 상하이 일일신문 기자가 임시정부를 직접 방문해 보도한 것을 독립신문이 그해 9월30일자에 다시 게재했다. 기사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소제목) 당당한 집, 엄중한 경계, 정숙한 내부상태. (내용)한국독립 가정부(假政府·임시정부)가 프랑스 조계지에 있다고 들었으나 한 번도 가서 본 일이 없었다. 어떤 곳인지 모르고 위험한 곳이라는 소문만 들었다. 그러나 조선독립당으로 흉도악한(凶徒惡漢)의 집합체는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방문했다. 뜻밖에 큼직한 건물이 울창한 수목으로 가려져 있는데 형용하여 말하자면 일국의 영사관 같다. 정원은 넓고 온실 화원까지 있다. 문을 지키는 인도인(당시 상하이의 경비원 중에는 붉은 터번을 머리에 쓴 인도의 시크교도가 많았다)과 교섭하여…(하략).’

키 큰 나무들, 문을 지키는 붉은 터번의 인도인, 정돈된 내부 등을 통해 1919년 가을의 임시정부를 상상할 수 있다. 지금은 조그만 표지판 하나도 없다. 마당로로 이전한 임시정부 청사가 있어서인지 원래 건물이 있었던 이곳까지 한국 정부의 관심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중심가치고는 널찍한 공간이라 잠시나마 서성거릴 공간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 안내판도 없는 이곳에 발길을 멈춘 순간 다소 황망했다. 텅 빈 곳에서 어지러워지는 시선을 수습하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독립운동사를 찾아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시선이 산만해지곤 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대사인지도 모른다.

청년 윤봉길의 의거에 세계가 놀라다

루이안플라자에서 마당로의 임시정부까지는 600m 정도 가면 된다. 왕복 2차선의 이면도로를 따라 횡단보도 네 개만 건너면 되는데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하다.

마당로의 임시정부 청사는 정확하게 말하면 상하이시 루완구 인민정부가 1990년 루완구의 보호문물로 지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舊址·옛터)’이다. 2층짜리 연립주택 세 채를 이어서 복원한 것으로 상하이 시내 중심의 신톈디(新天地) 근처 푸칭리 골목 안에 있다. 이곳은 김구 선생이 1926년 임시정부 국무령에 취임한 이후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폭풍으로 항저우로 옮겨갈 때까지 쓰였다. 나라 잃은 서러움을 안은 독립운동가들이 형형한 눈빛으로 권총과 폭탄을 만지고, 국제사회를 향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려고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성명서를 쓰던 곳이다. 투쟁의 결기를 세웠으나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명칭은 대한민국이었으나 실체는 위축돼 있었다. 그래도 강고한 의지로 고난을 견뎌냈다.

김구 선생은 활동이 부진하던 임시정부를 살리기 위해 1931년 비밀결사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임시정부 의열투쟁의 가장 극적인 성과는 1932년 4월29일 있었던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의 의거였다. 당시 일본군은 일왕의 생일 및 상하이사변(1932년 1월) 전승 경축 행사를 훙커우공원에서 열었다. 이 행사장에 잠입한 윤봉길은 단상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조선과 중국 침략에 앞장서온 군부와 정관계 핵심 인물 다수가 죽었다. 일본은 경악했고 조선인들은 살아 있는 항일투쟁에 환호했다.

중국은 조선의 강력한 항일 투쟁에 놀랐고, 세계는 조선이 살아 있음을 다시 인식했다. 특히 국민당 최고 권력자였던 장제스는 “중국의 백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격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69년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은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헌시를 써 윤봉길 기념사업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순리와 역리를 분별하고 옳고 그름을 판별하였고(別順逆 辦是非)

대의를 밝히고 생사의 도를 깨달았구나(明大義 知生死)

하늘과 땅 사이에 정의의 기개를 남겼으며(留正氣 在天地之間)

의를 취하여 인을 이루니 영원할 것이라(取義成仁 永垂不朽)

김구 선생의 피난처를 만나다

윤봉길 의사는 죽음으로 임시정부를 일으켰으나 의거의 후폭풍은 거셌다. 임시정부는 1932년 상하이를 떠나 1940년 충칭(重慶)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장제스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유랑과 다름없는 고난을 감수해야 했다.

윤봉길 의사의 흔적은 상하이 루쉰공원에서 볼 수 있다. 루쉰공원 안에 매원(梅園)이 있고 그 안에 매헌(梅軒)이 있는데 이곳이 ‘윤봉길 생애사적 전시관’이다.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거사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그의 전기를 입체적으로 읽는 듯한 느낌이 난다.

쑨원의 중화민국,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와 마오쩌둥의 공산당 모두 조선인에게는 실질적인 동맹이었고 고마운 이웃이었다. 그 증거의 하나가 상하이를 탈출한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다. 중국 정부가 유적지로 잘 보존하고 있는 항저우의 김구 선생 피난처 두 곳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동맹이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다.

김구 선생의 피난처 중 하나는 상하이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약 110㎞ 떨어진 자싱시 중심부의 메이완가라는 옛 거리의 76번지에 있다.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김구 선생이 일제의 추적을 피해 머문 곳이다. 김구를 피신시킨 사람은 국민당 원로이자 당시 상하이 항일구원회 회장인 추푸청이다. 피신한 집은 추푸청의 수양아들인 천퉁성의 집이다. 2층 목조건물인데 김구는 2층 침실에 기거했다. 침실에는 1층 현관 쪽을 내다볼 수 있는 조그만 창을 냈다. 1층 복도로 내려가 바로 쪽배를 타고 호수로 나갈 수 있는 비상구와 사다리도 있다. 평상시 김구 선생은 처녀 뱃사공 주아이바오가 젓는 놀잇배를 타고 호수 위에서 하루를 보낼 때도 있었다. 주아이바오는 약 5년간 부인으로 위장하고 김구 선생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살폈다.

1932년 여름에는 자싱역에 일본의 밀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추푸청은 김구를 메이완가에서 남쪽으로 35㎞ 정도 떨어진 하이옌현의 차이칭이란 별장으로 옮겼다. 추푸청의 사돈네 별장으로 난베이호(南北湖)의 호숫가에 있었다. 차이칭 별장(載靑別墅) 역시 김구 피난처라는 이름의 유적지로 보존돼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1996년 추푸청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가족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독립운동의 동맹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윤태옥 여행작가는 성균관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방송 및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했다. 2006년부터 중국 여행객 겸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작가로 살고 있다. 한 해의 절반을 중국 곳곳을 여행하며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를 찾아 답사 중이다. 저서로는 《중국 학교》(공저), 《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중국식객》, 《개혁 군주 조조 난세의 능신 제갈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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